카테고리 없음2009. 4. 28. 21:46



한국의 지성 이어령교수...

그분의 간증을 들었다..

6살 어머니를 잃고,  대낮에 논두렁을 가로질러 굴렁쇠를 굴리다 먹먹하게 엄습한 무엇으로 인해

한줄기 눈물을 흘리셨다는 그분의 기억..


들으면서 내내..
마치 내기억과 같이 다가온다.



두갈래길..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이다.

우리는 두갈래 길에 서있다.   6살 어린 소년은 두갈래 길에 서있었던거 같다.

76세가 된 지금 다른 갈래에 길에 들어서신것이다.


이삶을 부정하며, 허무와 무의미로 이 삶을 살관하며,, 소비할것인가?

그분의 살과 피를 먹으며.. 거듭난 새 삶을 살 것인가?


일상에 물음표와 느낌표를 가지고 바라보라는 당부를 남기시면서..  젊음의 탄생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우리의 삶이 새롭게 탄생될 것이라는 은유임을 알게 되었다. 






Posted by 패치아담스
하나님2008. 9. 30. 06:50

1. 위로의 말씀

왕상 19:9-10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인데 대하여 왕후 이세벨이 바알을 죽이려 하자 도망와서 굴 속에 숨어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그 곤고에 대한 위로의 말씀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물음에 에세벨의 복수를 피하여 숨어있다는 변명과 더불어 하나님의 명령과 믿음에 특별히 최선을 다 하였는데도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 같은 것이라도 ---

 

2. 독려의 말씀

왕상 19:13-14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제 무엇을 하여야 할터인데 어찌 굴 속에만 숨어있으려느냐 하는 채근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요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오직 혼자 남은 나까지 죽음으로 내 보내시겠습니까  지금 나갔다가는 당장 잡혀 죽을터인데요 하고 하소연 하는 것이겠지요,

 

3. 사명을 받음

※ 하나님의 채근은 곧 다음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라 볼 수가 있습니다.

왕상 19:15-16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4. 바알에게 무릅을 꿇지 않은 칠천인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시기와 때에 맞는 말씀의 공급하심.. ㅜㅜ  주님~  감사합니다....
Posted by 패치아담스
일상2008. 9. 19. 19:50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장 11절

한 인간의 인생이 무활동 속에서 흩어지거나, 분주한 활동 가운데 허비되지 않으려면,  그삶을 이끄는
보다 높은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키에르케고르



실존적 절망...

영원함 이란 개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원하지만, 영원하기는 커녕 우주의 먼지와도 같은 하루살이? 아니
지질학적 시간에 있어선 단 몇초에 불과할 우리의 실존..

지금 내가 인지하는 나는 무엇인가???


우울함이나 공허함? 정신적이거나 감상적인 무의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정말 무의미하고 덧없는 허상이 아닐까?

전도서에 나타는 해아래에 새것이 없고, 모든것이 일시적이고 궁극적인 것은 인간이 도달할수 없음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의 생각에는 인간이 도달할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믿음은 이 세상의 덧없는 것들을 초연했지만,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열심으로 세상을 살아 내는 것일 거다.

요즘 교회에서 믿고, 복받고, 천국 가라는 식의 3류 샤머니즘은  신앙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일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 세상의 보이는 것들이 모든것의 결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이 의미있다는 것은 지금의 의미보다는 다음.. 세상 밖에 있는 삶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내가 눈을 깜빡일때마다... 나는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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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패치아담스
하나님2008. 9. 10. 19:34

고통은 그렇게 나쁜것일까?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나 역시,  일상속에 경미한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과거에 어딘가에 나는 고통때문에 어떻게든 그 고통을 피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해야 했다.

고통은 상황의 문제일까?

단지 때가 좋지 않아서..  무속신앙인들이 헛튼소리로 하는 식의 액이 끼어서?

고통은 피하고 도망쳐야 할 문제인가?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보면 알수 있다.

인간의 안락이 신의 섭리보다 중요하고, 인간적 이성의 합리성이 신앙보다 우위에서 세상을 움직인다는 것을...

너무 비약인거 같긴 하지만...





유신론자인 나의 가정은..

하나님은 고통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신 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고통속에 들어가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어떤 작용과 변화가 있는것은 사실이다.

욥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내기를 보면 인간인 난 이해 할수 없는 부분이 많다.

사탄에게 인간이 하나님이 주는 무언가가 아닌 하나님 인격 자체로의 관계맺음을 증명하기 위한 내기..

하나님에 대해 오해 하고 싶지 않지만, 오해의 요소를 충분히 제공해 준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고, 나는 길어야 80년 남짓을 살아가는 인간이다.

내게는  오늘 하루의 안락과 평안과 물질적 필요의 충족이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욥기의 하나님의 모습이나..  신약의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인간이 중요시 하는 소원에 대해서

하나님은 별로 중요치 않게 여기는 모습을 본다.

그러한 엄청난 거리감!   내게 중요한 무언가가 하나님께는 아무런 결정적 원인이 안되는...



나는 모든 질문이 풀릴수 없다는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내게 복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문과 의심은 남아있다. 진정으로 인격적 하나님이 일하시는 우주가 사실일지..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의 일부인지...  하나님께서 그 해답을 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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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패치아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