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8월 1일생. 한국신학대학과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3년 3월, 전주 안디옥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선교 중심의 목회를 해왔다. 초교파 선교 모임인 바울선교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바울선교회 대표이사이며, 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이다. 저서로 『깡통교회 이야기』 『사람을 내 놓아라』 『불편하세 삽시다』 『선교하며 삽시다』가 있다.
이 시대엔 진정으로 존경하고, 흠모할 만한 어른이 많지 않은것 같다. 젊은이들이 롤모델로 삼고, 마음속에 닮기원하는 인물이 부족한 시대이다.
BUT.. 난 참 복받은 것이.. 가까운 곳에 존경할 분이 계시다는 것이다.
'이동휘 목사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요.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오신 산 증인이시다.
23년간 불편한 삶을 살며, 교회 재정의 70%를 선교에 사용하도록 하는 파격적인 교회 운영과 자가용 조차없이, 최소 생계비보다도 못한 봉급을 받으시는 청빈한 삶과 설교가 말이나닌 삶으로 살아내시는 그분의 성품은 혹자가 말하듯이 이시대에 몇 없는 성자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깡통교회란 말도 교회당을 짓는데, 돈을 사용하지 않고, 깡통으로된 특이한 가건물을 교회당으로 수리하며 사용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최근엔 PD수첩에 투명한 교회재정운영과 구제활동으로 소개가 된적도 있다. 수많은 대형교회들이 같이 소개되지 않았던 것은 참 유감이지만..
3년전 이동휘 목사님은 정년퇴임으로, 안디옥 교회를 떠나셨다.
그러나 지난 3년간 그분을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더욱 더 자주 생각이 나고, 닮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우리 안디옥 교회를 다니는 성도라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오늘 주일 낮 설교를 이동휘 목사님이 하셨다...
다시금 불편하게 삽시다라고 말씀하시던 그분의 마음과 저 넓은 세계 가운데 수많은 민족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여러분은 전라북도 전주시 금암동에 있는 [깡통교회]를 아십니까? 미군들이 쓰던 창고 구조물을 구해다 세우고 그 위에 양철(함석)지붕을 덮은, 그래서 영낙없이 깡통 을 반 잘라다 엎어 놓은 것 같은 '괴상망칙'한 교회말입니다. 창문이라고 내놓은 '몰골'이 하도 어설 퍼 흡시 전쟁터 난민 임시 수용소 같은 교회. 교회 건물임을 알아채릴 수 있는 표식이라곤 건물 앞쪽 상단부에 높지 않게 올려놓은 십자가가 달린 철탑이 전부인 교회.... 그러나 바로 이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숫자가 4천여명에 육박한다면 여러분 믿으시겠습니까? 40명도 아니고 400명도 아닌 4천여명 말입니다.
본 이름인 [전주 안디옥교회]보다는 [깡통교회]로 더 많이 알려진 이 '괴상한'교회를 예수마을 가족 들이 지난 6월 말에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익히 그 소문은 오래전에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저희가 이렇게 말씀드리니까 자칫 어떤 이들은 [전주 안디옥교회]가 매우 특이한 교회당 건물 디자 인으로 유명한 교회인줄 오해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교회의 예배당 건물이 그 형태나 구조 가 특이하다 못해 괴상망칙하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깡통 반틈을 엎어놓은 이 교회 예배당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디자인'운운한다면 그것은 이 교회에 대한 모욕일 수 있습니다. 전주 안디옥교회가 주목을 받고 있는 더 큰 이유는 이 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이들의 삶의 자세때문 이지 결코 특이한 예배당 모습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일반 기성교회의 틀 속에서 자라온 저희에게 [전주 안디옥교회]의 소문은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창고같은 함석지붕 교회당 건물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런 건물일 수 밖에 없게된 내용은 더욱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일반 교회들의 재정(헌금)사용 내역에 있어 외부로 내 보내는 선교, 구제비는 전체 재정의 10∼15% 선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선교,구제비의 비율이 전체 20%, 30%에 이르는 교회 들은 대단한 자부심과 함께 칭송까지 받을 수 있는 '훌륭한'교회로 인정되어집니다. "야! 삼분의 일씩 이나 이웃과 나눈다고?"
그러나 전주 안디옥교회는 창립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교회전체 재정의 몇%를 밖으로 내보내 왔 는지 아시겠습니까? 놀랍게도 60%입니다. 어느 성도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말이 60%이지 실제로 는 80%가 넘을 때도 있습니다." 일반교회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전체 재정의 60∼80%를 밖으로 내보낸다 면 교회당 건물 유지와 상임직원(교역자, 사무, 관리)사례비, 각 부서 교육비 명목의 지원금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주 안디옥교회는 지금부터 10여년 전 창립될 때부 터 철저하게 교회재정의 60%를 밖으로 나누어왔으며 그러고서도 교회가 점점 성장하여 개척당시의 70 명성도가 10년이 지난 지금 4천성도로 급격하게 자라났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단순히 숫자상의 성장 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많이 내보내고서도 교회가 성장.유지되어 왔음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나누는 교회! 나누는 크리스챤!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가장 강조하며 가르치신 것 가 운데 하나가 '이웃과 함께 나의 것을 나누는 삶'입니다. 성경 구석구석에 '나의 소유를 이웃과 함께' 하는 교훈과 명령이 수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속에 모셔들인 사람에게 나타나는 첫 징표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이웃과 함께 기꺼이 아낌없이 나누는'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 바로 '나누는 교회'로서의 모습이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쓰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 각자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행2:44∼45)
그러나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불신자(비기독교인)들의 평가는 안타깝게도 {나누는데 인색 하고 쩨쩨하고 교회당 올리기에 환장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해도 더 이상 그들은 그런 평가를 철회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웃과 함께 더 많이 나누기 위해 할 수 있는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첫째는 우리 자신이 땀흘리 고 수고하여 더 많이 버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제 손으로 열심히 일하여 선한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가난한 성도들을 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엡4:28) 이 말씀은 도적질하던 사람들에게 명하셨던 말씀인데 하물며 우리 모두에게 당연히 적용될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두번째는, 제한된 수입에서 우리보다 더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기 위해선 우리 자신이 좀 덜쓰고 아끼 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수익을 추구하는 영리단체가 아닌 교회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전주 안디옥교회 예배당 건물이 조립식 양철지붕 깡통교회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 다. 애초부터 전주 안디옥교회는 "주는 교회가 되어 교회재정의 60%이상을 밖으로 내 보낸다"는 대강 령을 실천하다보니 '번듯한'예배당 지어 올리는 일은 '꿈에도'상상못할 일이었습니다. 설령 누가 공짜 로 지어서 헌납하였더라도 그 건물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야 할 재정이 아까워(없기도 하고) 그 건물 을 포기하였을 게 뻔합니다.
전주 안디옥교회는 양철지붕이기에 한여름엔 그 열기가 어마어마하지만 그 흔한 에어컨 하나 설치되 어 있지 않습니다. 교인 수가 수천명이 되어도 대형 버스 같은 건 구경조차 할 수 없습니다. 교육관조 차도 조립식 건물입니다. 놀라운 일은 이 교회를 개척하시고 지금까지 이끌어 오신 이동휘 목사님께는 승용차 한 대 조차도 없습니다. 그걸 유지하려면 기사도 둬야 하고 유지비도 적잖기 때문입니다. 요즘 도회지 교회 목사님 들 사이에 최고급 승용차 마련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이 때에 티코 한대 조차도 거절하시는 이 목사님의 모습은 하나의 충격입니다.
어느 성도가 들려준 말입니다. "목사님댁 가구도 전부 남이 쓰던 것들이예요. 교인들 집에서 안 쓰는 것 가져오라고 해서 나누어 쓰게 하시지요" "좀 불편하게 삽니다. 선교를 위해, 이웃을 위해!" 이동휘 목사님께서 외치시는 말씀입니다. 이 교회는 교회재정의 상당한 비 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목사님 스스로 교인 수가 2천명이 넘을 때까지 부교역자를 두지 않으시고 목사님 혼자서 교인들을 돌보셨으며, 교회엔 사찰(관리인)도 두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이 교 회엔 사찰이 없습니다. 전 교인이 사찰인 것입니다. 수천명 교인의 이 교회 사무실에는 단 두명의 사무직원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나마 2년전만 해도 한 명 뿐이었고 4년전엔 한 명의 사무원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교회는 각 기관에 대한 재정보조가 일체 없습니다. 어린이 교회학교, 중고등부, 대학부, 성가대...! 모두가 자체 헌금으로 유지할 뿐 아니라 자체헌금 가운데서도 60%는 무조건 선교비로 사용케 되어 있 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봉사자는 결코 어떤 보수도 받지 않습니다. 지휘자, 반주자...! 어린이 주일 학교의 경우 이 교회는 먹을 것과 상주는 것을 하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교회 교인들은 불평이나 원망은 커녕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주는 교회"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어느 어린이가 쓴 글입니다. "우리 교회는 깡통을 절반 잘라 엎어 놓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우리교회가 좋다. 왜냐하면 우리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이고 남을 도와주는 교회이기 때문 이다"
이 교회는 현재 국내의 어려운 농촌교회 마흔 한 곳을 지원하고 있으며, 아홉군데의 개척교회를 전폭 적으로 지원하고, 이 교회를 중심으로한 [바울선교회]를 통해 약 75명에 가까운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 는가하면, 해외 13교회, 25기관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소년소녀 가장, 장애자 재활원, 타선교단 체 등 31군데의 국내 기관 및 어려운 개인에게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는데 이 교회가 한 달 동안 바깥 으로 내보내는 헌금 총 액수가 무려 6,500여만원이라니...! 함석지붕 조립식 깡통교회에서 1년에 7∼8억의 거대한 금액을 남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시대의 우리 한국 교회들에게 하나의 경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우기 그렇게 나누기 위해 자신들은 '미련해 보일 정도'로 아끼고 고생을 자초해 가면서 말입니다.
저희 예수마을 가족들은 '깡통'속에서 '가난하지만 부요한, 부요하지만 가난한' 성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우리가 그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였습니다. 저희는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또 발견 하였습니다. 주보에 아무리 찾아 보아도 [담임목사 이동휘]라는 표기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찾아낸 이목사님의 성함은 교회전화안내란에 부교역자 이름 다음 맨 끄트머리에 적혀있을 따름 이었습니다. 이목사님이 얼마나 겸허하신 분이신가를 알 수 있는 한 단면이었습니다. 저희는 이동휘 목사님과 함께 나흘간을 언젠가 보낸적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희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는 이목 사님의 모습은 조용하시면서도 온화하시고 너무나 겸손하신 모습입니다. 오! 이 세대의 우리가 이목사 님과 같은 존재를 모시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저희는 전주 안디옥교회가 부럽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교회를 가지고 있는 전주라는 도시가 부럽습니다.
다행히 "전주 안디옥교회를 닮자"라는 운동이 급격하게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발버둥 치는 교회... 이 나라가 회생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이런 교회 들이 더욱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크리스챤들이 점점 많아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가난한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 기꺼이 우리의 씀씀이를 줄일 수 없을까요? 좀 더 넓은 집, 좀 더 큰 차, 좀 더 성능좋은 가전제품을 가지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고 좀 불편하게 사는 것 을 선택하는 대신 그것조차도 없는 이웃들을 위해 우리의 소유를 뚝 떼어 나누어 줄 '진정한 용기'를 가질 순 없을까요?
문득 언젠가 저희 [찬미]회보에 소개된 집없는 고아소년에게 방이라도 하나 구해 주라고 거금 백만 원을 보내오신 서울의 한 자매님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그 백만원은 아마도 결혼 비용으로 힘들게 힘들게 모아 둔 돈이었을 것입니다. 저희에겐 그런 넒은 마음과 용기와 호쾌한 결단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타깝습니 . 그래서 때론 저 희 자신이 밉고, 종아리를 때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최근 어느 신앙 월간지에서, 자신이 죽은 이후 자신의 안구(눈)에서 각막을 떼내어 앞 못보는 각막질 환 환자들에게 이식해 주라는 '안구기증'행사에 전주 안디옥 교회 교인들이 수백명씩 동참했다는 기 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참 멋있는 '예수쟁이들'이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대구에서도 몇 교회들 이 대거 참여한 바 있지만).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졸렬한 마음의 사람인지 살아있는 동안도 아니 고 죽은 이후에 조차도 보통 렌즈정도에 지나지 않는 손톱만한 각막(안구 전체가 아닌)을 이웃과 나누 는 것에도 몸서리를 치며 손을 내젓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전주 안디옥교회 교인들은 물질로서도 힘 에 겹도록 이웃들과 나누면서 자신들이 죽은 이후에까지 자기의 몸을 이웃에게 내어 주는 사람들 아 닌가요?
대구의 큰 교회 목사님께서 순천 어느 집회에 가셔서 "우리는 백 몇 십억을 들여 새 교회당을 웅장 하게 짓고 있다"고 설교시간에 자랑하시더라는 이야기를 예수마을에 들린 순천에 사는 어느 청년에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모두 씁쓸히 웃었지요"라고 덧붙였습니다. 대구 사람으로 부끄러웠 습니다. 사실 저희 자신도 제대로 올바르게 살지도 못하면서 대구의 그 큰 교회를 욕할 자격도 없습니 다. 그래도 안타까운 것은 저희 젊은이들이 설레는 가슴으로 사모하고 부러워하고 흉내내고 싶고 본받 아 살고 싶은 교회가 우리 주변에 너무나 적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멀리 있긴 하지만 전주 땅에 있 는 [깡통교회]라도 바라볼 수 있으니 위안이 됩니다. 아! 사모가 됩니다. 닮아 살고 싶습니다. 가슴이 벅찹니다. 짧은 생에 이 땅에 살다가 정말 돈 한푼이라도 멋있게 쓰고 주님나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 니다. 안디옥 교회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9장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마케도니아 교회 성도들이 행한 일에 대한 바울 사도의 칭찬과 고린도 교회에 대한 훈계가 오늘날의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성경(특히 예수님 이후의 신약 성경)에서 언급된 [헌금]의 대부분은(아니, 전부는) 바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마케도니아 교회 성도들은 바울에게 "제발 우리도 흉년으로 고생하고 있는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여러차례 간청했습니다(8:4) 그런데 마케도니아 사람들의 형편이 넉넉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어려운 시련 과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오히려 넘치는 기쁨으로 헌금을 많이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이 힘껏 헌금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에 겹도록 헌금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8:2∼3) 그러면서 바울 사도 는 고린도후서 8:1에서 마케도니아 성도들의 이런 모습을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베푸신 큰 은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나 자신도 넉넉하진 못했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나의 것 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그 마음과 용기야말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은혜"라는 말입니다. 많은 교 회들이 [우리교회는 은혜가 넘치는 교회다]라고 하는데 고린도후서 8:1에 의하면 정말 은혜가 넘치는 교회는 전주 안디옥 교회같은 교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성전건축'을 교회 최대의 대역사(大役事)로 꼽고 전 교인의 최고, 최대의 에너지를 건축헌금에 쏟게하여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건축헌금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의 반, 삼분의 일을 쾌척(快擲)한 교인은 있을 수 있어도 선교를 위해,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재산의 전부 혹은 반, 삼분의 일을 내놓은 교인은 그토록 드문 것입니다. 평생 '힘을 다하여, 아니 힘에 지나도록' 헌금해본 기억이 교회당 건축 때 뿐이라면 우리는 참으로 불행한 크리스챤들 아니겠습니까? 깡통교회 [전주 안디옥교회]! 무언의 행동, 실천으로 한국교회의 개혁을 도전하고 영적 대각성에 대 한 경종을 울리는 그대들이여! 복되도다. 오! 복되도다!
전주에 들러 만난 한 목사님! (개척 7∼8년만에 800여명의 성도로 급성장하고 있는 전주 온누리교회 의 담임이신 오몽근 목사님). "우리 교회도 지금 예배당이 너무 비좁아 옮겨서 넓혀야 하는데... 조립식 으로 짓기로 했지요." 돌아오는 길! 전주 땅에 대한 부러움과 시샘으로 울화통이 공연히 터져 올라 한숨만 푹푹 나왔습니 다. 전라북도 전주! 참 복된 도시입니다. †
한 여대생이 새채빚 300만원 때문에 고통 받다가 아버지에 의해 살해,그 아버지는 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원금의 몇배를 이미 갚은 상태임에도 수천%의 이자를 요구하는 강도 사채업자가 활개를 친다.
말도안되는 저런 사채업자들이 설수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할텐데....ㅜㅜ
p2p 금융이란 내용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더욱이 이제 거의 출범 한지 2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옥션이 신문선해설위원을 광고모델로 써서 미디어 매체를 통해 알려지던 그 즈음이 떠올랐다.
내가 보는 신문에는 P2p금융에 관한 내용을 본적도 없기 때문에..
물론 내가 안본 사이 다뤘을지도 모르지만..,(한국일보, 한경)
이렇게 획기적인 생각을 한 창업주는 누구일까란 생각과
한해 매출이 얼마나 될까란 궁금증이 몰려왔다.
머니옥션 <- 만약 내가 굳이 취직을 해야만 하는 구직자라면 저런 곳에 취직을 하겠다 월급은 안받아도 좋으니
스톡옵션이라도 받게 해달란 식으로...ㅋ 제2의 옥션이 될지도... 후발업체도 있던데... 원클릭 이란 곳이다.
난 빚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원금이 어느정도 보장된다면 누군가에게 대출을 해주는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세상이 가면 갈수록, 인터넷으로 들어가고 있다. GIVE AND TAKE 의 인간관계의 기본원리를 웹의 시스템이 보장해주는 형태의 이런 금융업은 앞으로 크게 성장할 거라 생각된다. 정이 사라지고, 시스템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가는것 같다.
찬찬히 살펴본후 나도 저곳에서 사채업자가 되어볼까 한다. 물론 선한 사채업자이다. 그곳에선 자신의 상황과 이야기를 적고, 그것에 공감이 가는 투자자가 돈을 빌려주는 방식이다. 물론 CAM 이자 보다 낫다.(요즘 CMA이자가 정말 장난아니게 낮다. 1-2% 수준이니..)
더 큰뜻을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하고, 더 큰 불확실과 불안으로 자기를 내모든 과정이 없다면,
모든이들이 부러워 할만한 성취와 성공은 요원하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 어떤 분야이던 성공한 이들은 존경과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다.
또 실패를 기뻐할줄 아는 시각도 필요하다.
"인간은 쉬운 전투에서 이기는 것보다 어려운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비로소 성장하는 법이다."
(어떤책인지 기억이..ㅋ)
최근에 대부분의 청년들은 안전빵?을 선호하고,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더 불안한 삶가운데 전전 긍긍하는 모습이다. 똑똑한 청년들이 모두다 월급쟁이가 되고, 교사가 되고, 공무원이 되면, 누가 사업을 하고, 누가 학문을 하고, 누가 창의적인 성취를 통해서, 이 사회를 발전시킬수 있을지 의문이다.
똑똑하고, 젊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다. 단순히 일자리부족의 문제 그 이상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안정적 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의 시대변화를 가르치고, 유연한 사고와 창의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면, 전전긍긍하며, 젊음을 헛된 것에 소진한 청년들의 허망함은 피할수 없을 것이다. 오직 월급을 정년까지 받는 것에 집착하면, 그마저도 불가능한 인생이 될수 있음과 동시에 그것이 가능했던들, 굉장한 재능과 자질을 갖추고, 고작 생존을 위해 어떠한 의미 추구도 없는 그러한 지루하고 고루한 인생을 살다가 갈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아인슈타인의 역량을 가진 청년이 당장의 생존때문에 과학교사나 공무원으로 삶을 마감한다면, 이같은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예술을 하고 싶으면, 당장 예술을 하라!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면, 더 늦지 않도록 서둘러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의 좋아하는 것을 외면하는 삶을 살지 말자. 자신의 내면에서 나는 목소리를 따라서 살아가면,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구누구 때문에.. 안정성을 위해서.. 혹은 부모의 간절한 바램에 따라.. 자신의 삶을 망치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삶을 위해서....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이 9급 공무원 책을 들고 미친듯이 공부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다. 서연고이대를 나오고도, 공무원 하겠다고 노량진 고시원에서 미친듯이 공부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다. 분명히 이 시대는 젊은 정신이 잘못 소모되고 있는것이 분명하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정신이 변화되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면, 아니, 할수 있다는 꿈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라.
대담하다는 것. 그 자체가 천재성이고 힘이며, 마력이다.
-괴테-
유연한 사고와 창의적인 대처? 내가 쓰지만, 너무나 모호하다. 이것에 대해선 다음에 구체적으로 쓰도록 해야겠다.
아무리 아니다, 뭐가 맞다 해도 당최 믿지 않는데다가,
로스쿨이 생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학교별로 서열 세우는 분위기는 참 맘 아프네요.
사시 밑에 로스쿨, 로스쿨 중에서도 서울대 밑에 뭐, 뭐, 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글을 써 봅니다.
1.
사시 준비하는 사람들의 박탈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만약 합격하지 못하고 아직도 준비중이었다면 그랬을 것입니다.
저도 사실 때로는 배가 아프지만, 생각보다 로스쿨 졸업생들의 대우는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제가 고시공부하면서 느끼는 바로는,
수석과 출원자 전체 중 하위권 사이의 차이는 크지만,
우리학교에서 열심히 준비한 사람들은 많이들 '합격권'안에 들어가고,
합격권 안에 들어간 사람들끼리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입니다.
합격권 안에 들어가고 나면, 나머지는 채점자의 기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고시를 해본 분이라면 아마 아실겁니다.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차이가 그렇게 하늘과 땅인지,
'그것도 실력이다' 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지, 말이죠.
그래서 고시를 해서 붙은 사람이라면, 함부로 고시에 늦게까지 실패하는 사람에게,루저니 뭐니 말을 못한다는 것. 아마 다 아실겁니다.
고시에서 실패해서 로스쿨로 돌려서 합격했다, 하는 건, 지금도 고시를 하고 있는데 로스쿨을 못 넣어본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법대생들 분위기 보세요. 쉬쉬하면서 생각보다 로스쿨 엄청 많이 넣었고, 이번에 넣지 않았던 친구들도 주위에서 합격한 것 보고는 내년에는 넣겠다면서 병행 선언한 친구들이 무지 많습니다.
이것만 봐도, 함부로 사시가 더 낫네 로스쿨은 사시 이중대네 이런 말은 못할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3년간 메이저 로스쿨에 들어간 사람이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합격권에 훨씬 못미치는 함량 미달의 변호사들이 배출될 것이냐, 저는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때로 로스쿨 입학을 마치 사법연수원 들어간 것과 동일선상에서 놓고 생각하는 로스쿨 합격생들이 가끔 보이던데.. 그런 건 좀 어이가 없죠. 최소한 자신이 사법시험을 '합격을 전제로' 준비할 좋은 환경에 놓였다라는 겸허한 자세로 공부를 한다면 크게 무시받을 일은 없을 겁니다.
2.
제가 교수님들께 말씀을 듣기로는, 이번에 지원한 사람들의 수준이 엄청났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법대생들을 우대한 사실은 정황상 맞는 것으로 보이나, 적어도 비법대생들의 경우는 학점이나 기타 경력이 대단하거나, 최소한 '독특한' 사람들이라 들었습니다.
그리고 연수원 분위기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로스쿨러 그 바보들' 이라고, 사석에서도 말하는 사람 한 명도 못봤습니다. 사실 우려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적어도 메이져 로스쿨은 잘 돌아가지 않겠느냐, 그리고 그들이 어떤 역량을 발휘하게 될 것이냐, 살짝 살짝은 기대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안타깝게도, 사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로스쿨 이하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불신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일부 로스쿨 합격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연수원 커리큘럼은 지나치게 구시대적이라느니, 전문성은 우리가 더 낫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어이없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무관으로 있으면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폭넓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끼는 점은 요새 법조 인력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것에 '법대생들만의 감각'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기존의 법조인들이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최소한의 인원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첫번째 로스쿨 학생들이 배출되고 나면 상위권 로스쿨에서 일정 정도의 인원은 꼭 선발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로스쿨 학생들 사시생들이 무시하면, 김장가고 태평양가고 이런 로스쿨 졸업생들 보면서 어떤 박탈감을 느낄까 저조차 걱정됩니다.
이번에 모 로펌들에서, 변리사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로스쿨 많이 지원했습니다. 실제 서울대나 연세대, 고려대 로스쿨에 입학한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왜 지원했느냐하면, 자기가 판단하고 때려친 것이라기 보다는 주변과 펌에서 권했기 때문입니다. 왜 권했을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겁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군미필이 이번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로스쿨에 들어가서 관련 직역에서 병역마저 해결하면, 그건 정말 전망이 밝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3.
로스쿨 학벌 얘기도 많이 올라옵니다.
참 답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탁 까놓고 얘기를 해보지요.
이미 사법시험에서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사이의 학벌 차이는 사실상 없습니다.
로스쿨에서도 메이저 로스쿨 사이에는 큰 차이 없을 겁니다.
사실 '서울 법대 프리미엄'이 임관권 밖의 변호사에게 조금 적용되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학벌 차이는 이미 소멸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가끔 이 게시판에,
김장 변호사 프로필이라는 둥, 태평양 프로필이라는 둥, 올라오는데,
거기 서울대 법대가 많은 이유는 그냥 단순히 '성적이 좋아서' 입니다.
법대라서 우대한 결과가 절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학벌은 '차별 안 받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적어도 우리세대에서는요.
왜 법조계 핵심인력에 서울대 법대밖에 없냐구요? 당연하지요.
옛날 사시 100명, 150명, 300명 시대 선배들이 지금 법조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 때는 합격자 전체 중에서 서울 법대가 6-70%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60, 70년대 선배님들과 사모임 (기독 법조인 모임 같은 것이 있어요) 에서 뵈면,
서울 법대 꼴찌가 고대 법대 수석보다 낫다는 말을 막 하곤 합니다.
근데 지금 정말 그런가요?
그 결과는? 최근 들어 메이저 로펌에서 타 대학 학생들이 신입 변호사가 되는 경우가 차츰 많아지고 있죠. 사실 성적 비슷해서 법무관까지 오게 되면, 2년차쯤에 이리저리 컨펌 들어오는 펌들을 보면 학교에 따라 차별이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지금 판사 임관되는 사람들 봐도, 많은 비법대, 연고대 학생들이 임관하고 있습니다. (많다고 하기는 조금 민망한 수준이지만)
아마 조금만 더 지나면 사법시험 세대들의 학벌 차이도 크게 좁혀질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이번 로스쿨은 그나마 객관적인 입학생 차이도 적어 보인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위에 밝힌 바와 같이 펌 내에서, 혹은 지인들이나 지인의 자식들이 꽤 많은 수 로스쿨에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입시를 간접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각 학교의 기준들을 비교하게 된 거죠.
특히 이번에 고대 로스쿨과 연대 로스쿨은 이래저래 법조계에서 설레발들을 많이 친 것으로 아는데, (고대는 뭐 설문 돌린다고 난리쳤고 연대는 면접 때 변호사들 모셔간다고 난리쳤고) 그 과정에서 사정에 간접적으로 관계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서울대 출신의 특징이 (제가 옆에서 보면) 끝없이 자기가 잘 난 것도 없으면서 '서울대는 특별해' 라고 주문을 거는 사람이 많다는 건데요. 요새 같이 급히 돌아가는 세상에서 간판 믿고 있다가는 큰 고생하게 될 겁니다.
하다못해 로스쿨은 말할 것도 없죠.
혹자는 서울대 로스쿨이 서울 법대의 법통을 이어간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데..
(아마 비법대 출신 로스쿨 합격생으로 보입니다만) 법대생들의 반응은 '네버'입니다.
일단 대학원생들이건 학부다니는 후배들이건 도서관 건설부터 짜증이 날대로 나있죠. 동질의식도 전혀 없구요.
그리고 일단 자기를 돌이켜 봐요. 서울대 경제학부를 나와서, 로스쿨 들어온 사람이, 법대 98 학번을 보고 '선배님' 하기가 쉬울까요 경제 98학번을 보고 '선배님' 하기가 쉬울까요? 그럼 고대 법대 학생은 누구한테 선배님이라고 합니까? 로스쿨은 그냥 전문대학원입니다. 예전같은 인맥이나 파워를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기대는 좀 접어야지요. 그냥 '우리 과 출신이 XX대 로스쿨에 갔대' 지, 'XX대 로스쿨 학생은 이제 XX대 법대 동문' 이라는 생각이 있습니까?
주류 비주류 논쟁도 어이가 없습니다.
지금 예컨대, 서울대 공대를 나와서 서울대 로스쿨을 들어간 사람이,
서울대 로스쿨이 이제 주류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우스울 밖에요.
그렇게 치면 일단 비법대 자체가 법조계 비주류고, 로스쿨 자체가 법조계 비주륩니다.
어차피 비주류의 비주류 길을 가는 주제에, 그 안에서 누가 서열이 높네 마네 얘기하는 건 웃기죠.
(진짜 그렇다고 하는게 아니라, 로스쿨 안에서 서열따지는게 무의미하다는 겁니다.)
길게 길게 썼는데요.
스누라이프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르는 글들이 무지 많이 올라옵니다.
괜히 학부생들에게 서열의식, 패배감, 우월감을 조장하는 글들도 많이 올라오고,
심지어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사실들이 엄청 올라오더군요. (허위라는 거죠.)
생각보다 법조계가 그리 꽉막힌 동네가 아닙니다.
무턱대고 학벌로 대놓고 차별하는 동네도 아니고, 출신 성분으로 가르는 동네도 아닙니다.
위의 대선배들 세대가 지나면 그런 경향은 더 생길거고, 이번에 사시 합격자 서울대생들이 급갑한 것을 봐도 알겠지만 우리학교는 예전의 독보적인 위상을 분명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취직준비하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것 같은데, 고시하는 사람들은 꽉 막혀있네요.
로스쿨 준비하는 사람들 그냥 뚝심있게 하시고,
연대건 고대건 서울대 연대 고대급 로스쿨에 일단 들어가셨으면,
나중에 김장 갈수있을지, 태평양 갈수 있을지 걱정말고 일단 열심히 하십시오.
특히 05, 04 미필인데 이번에 로스쿨 합격하신 분들은,
정말 대단한 기회 잡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세요.
"공자는 한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데카르트는 한 살 때, 파스칼은 세 살 때 각기 어머니를 잃었다고 합니다. 창조적인 예술가들 가운데 고아의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생아였고 바흐는 고아였습니다.
루소, 사르트르, 몰리에르, 라신, 스탕달, 보들레르, 카뮈, 조르주 상드, 키플링, 에드가 엘런 포우, 단테, 알렉상드르 뒤마, 톨스토이, 볼테르, 바이런, 도스토예프스키, 발자크 등도 모두 고아였답니다. 이들은 상실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
밟혀 봐야 일어날 힘이 생기는 것이다.
상실과 고통을 통한 깊어짐은 창조적인 에너지를 생산하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요즘 느끼는 거지만, 법전원의 다양한 학생들은 대부분 차를 몰고 다닌다.. 마티즈 부터 산타페등등.. 개중엔 아주 고급차도 있어서 눈길이 가더군....ㅋ
역시 돈이 받춰줘야 전문대학원 공부는 할수 있는건가 하는 느낌도 들구...ㅜㅜ 로스쿨이 사회양극화를 부추기는 그런 제도로 썪지 않기를 기대한다.
법조인력 양성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첫 수업이 2일 전국 25개 대학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이날 서울대에서 열린 ‘2009학년도 법학대학원 입학 및 개원식’에서 로스쿨 신입생들이 교수진 등을 박수로 환영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전국 로스쿨 25곳 어제 첫 수업… 학생들 ‘기대와 불안’ 교차
“토론때 답변 못하면 불이익” 설명에 긴장
“법-제도 정비 제대로 안돼 어쩌나” 걱정도
“헌법 수업을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 손들어보세요.”
2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첫 수업이 열린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법학대학 B109 강의실.
‘헌법Ⅰ’ 과목 강의를 맡은 김종철 교수가 수업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던진 질문에 39명의 학생 가운데 3분의 2가량이 손을 들었다.
“허허. 엄청 많네. 만만치 않은 수업 커리큘럼인데….”
학생들의 표정은 굳어졌지만 김 교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수업은 토론식.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경우를 위해 한 학기에 질문회피권을 2개 드립니다. 회피권을 신청하지도 않고 답을 못하면 불이익이 있겠죠. 그리고 원고지 40장 분량의 과제물도 있습니다.”
기존의 법조인력 양성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로스쿨의 첫 수업이 이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경북대 강원대 등 전국 25개 로스쿨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교수들은 기존의 법대와 로스쿨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직장인, 사법고시 준비생, 대학원생 등 출신이 다양한 학생들은 ‘로스쿨 1기생’이라는 기대감 속에서도 철저한 토론식 수업방식과 강도 높은 커리큘럼에 부담감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첫 수업에 앞서 “토론형 수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판례 위주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법전 위주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낙제 기준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을 쉴 새 없이 던졌다.
이날 고려대 로스쿨에서 첫 수업을 받은 김민규 씨(26)는 “과거 법대에서 1주일에 4시간씩 두 학기에 걸쳐 배우는 분량을 한 학기에 끝내야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방대학의 로스쿨 입학식 및 개원식에는 지역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입학식을 한 경북대에는 김범일 대구시장, 김관용 경북지사, 김수학 대구지법원장, 박한철 대구지검장 등이 참석해 로스쿨에 대한 지역사회의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수년간의 우여곡절을 거쳐 첫 발걸음을 뗀 로스쿨이지만, 최근 국회에서 변호사시험법 제정안이 부결되고 일각에서는 일반인도 변호사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예비시험제’ 도입을 주장하는 등 관련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데 따른 불안감도 적지 않았다.
전남대 로스쿨 임시 학생대표인 이철수 씨(47)는 “로스쿨에 들어왔지만 마음은 가볍지 않다”며 “로스쿨은 기존 사법시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인데 아직까지 변호사 시험 과목조차 확정되지 않아 입학생들이 불안해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연세대 로스쿨의 최민혁 씨(29)는 “모든 제도가 정비되고 로스쿨이 시작됐다면 더 좋았겠지만 앞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착되리라 확신한다”며 “시험이 아닌 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로스쿨 취지가 잘 반영된다면 우리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수업 첫날, 교수들이 ‘예비 법조인’들에게 건네는 당부의 말도 여느 수업과는 달랐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전효숙 이화여대 교수는 이날 ‘민형사 절차법’ 강의에서 “출석은 자유, 결석은 자진신고만 하면 된다”며 “출석도 속이는 사람이 어떻게 법관이 되겠나. 자율신고를 하는 이유는 법조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제가 다니는 로스쿨은 1학년 과정을 통해서 기본3법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2학년 1학기까지 변호사시험법과 관련된 과목을 모두 수강하게 됩니다. 이후로는 예컨대 형사판례연구, 민사판례연구와 같이 기본법 공부를 다시 하면서, 실무 - 판례 과목을 통해 심화된 교과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와 함께 개인적으로 변호사시험을 준비하겠지요. 전공은 민사, 형사, 상사, 소수자인권.. 등등의 7가지 중의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2] 로스쿨 분위기, 학생들의 열의는?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평시에는 11시 반 ~ 12시, 시험기간에는 거의 밤새 열공모드입니다. 다들 동기가 확실하다보니, 수업자체에 대한 집중도나 중간고사에 임하는 마음에 자세가 많이 다른듯. 다만 시험이 없는 학기초에는 엠티도 가고 술자리도 종종 가지고 했었습니다. 이점이 고시랑은 좀 다른 측면이 있지요.
이 부분을 고민하실때, 커리큘럼상 지금 각 대학 로스쿨에서 이루어지는 강의가 '기본삼법'임을 고려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법은 특성상 다소 지루하고 난해하지만, 법체계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는 중요한 과목입니다. 때문에 실무출신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는 이론이 좀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는게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기본법의 경우는 학부강의와 딱히 차별화 될 수 있는 여지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에 따라서 토론식 강의를 부분적으로 도입하시고, 판례숙제도 내셔서 차별화된 강의를 하시는 경우도 있고, 저에게는 상당히 유익했어요 ^^ ;;
한편, 제가 로스쿨 2학년 커리큘럼에 속한 과목도 한과목 듣고 있는데, 이건 확실히 확부와는 차원과 수준이 다릅니다. 교수님은 실무출신은 아니신듯 합니다만, 오히려 제가 학부때 경험했던 실무출신 교수님보다 판례나 실무, 이론에 더 탁월하시고, 같이 수업듣는 실무경험이 있는 학생분들은 정말 어지간한 법학도들보다 훨씬 탁월하신 듯 합니다. 실무출신 교수에 대해서 약간의 환상을 품으신 분들이 있으신듯 한데, 교수님에 따라 수업의 질, 학문적 역량, 교수법이 많이 다르므로 수강신청할때 염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또 아래에 소장도 안써보신분이 형소법 강의를 한다고 비판하시는 분도 계셨는데, 형소법이랑 공소장 쓰는법은 다른 교수님께 따로 배워도 딱히 큰 지장은 없죠.
그리고, 기본법의 판례나 사례에 대해서는 1학년 시기를 통해서도 어느정도 접하게 되겠지만, 2 - 3학년 교육과정을 통해 보다 심도 깊게 배울듯 합니다.
가장 고민하시는 부분이 로스쿨 수업의 수험적합성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 게시판에도 "로스쿨 수업은 수험적합성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수험에 최적화된 신림동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이 계신데, 물론 일면 타당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신림동 강의를 듣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앞으로도 들을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많이 계십니다. 뿐만아니라, 학생들이 주로 보는 교과서 역시 수험가에서 정평이 난, 정교수님의 헌법책, 지교수님의 민법책, 신선생님의 형법책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기존 법대생들에게는 수험서와 수험강의가 너무나 당연시 되어 왔던 터라 지금 상황에 대한 반대해석의 여지도 약간은 보여집니다. 즉, 기존 사시합격자들중 교수님의 학교강의만으로 사법시험 합격한 사람이 정말 초극소수인점을 고려하면, 교수님의 강의와 수험적합성은 애시당초 차원이 다른 문제로 평가대상에 포함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교수님들도 적극적으로 변시를 염두하시고 강의를 진행해 나가시지 않으실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것이죠.
저의 경우, 기본삼법 강의는 이미 사시준비하면서 들었기 때문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회사법의 경우는 대학원 수업만 듣고도 스스로 공부하여 2차시험 사례문제나 기출문제 정도는 그럭저럭 푸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저와 같이 수업듣는 분들을 보면, 제가 예외적인 사례는 아닌듯 하네요.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로 신림동 강의를 두세번을 들어도 전혀 감을 못잡으시는 분들도 계십디다. 이렇듯 로스쿨 교육의 효과에 있어서는 다분히 상대적인 측면이 있는듯요.
한편, 과제는, 학교마다 - 그리고 수업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저의 경우는 적어도 과제때문에 학습에 방해된 경험은 없습니다.
또한, 연수원 교육과 로스쿨 실무교육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분들도 계신데,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곤란한 측면이 있지요..
[3] 비용적 측면, 장학제도
로스쿨의 학비부담의 측면에 대해서는 이미 게시판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기 때문에, 재차 언급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로스쿨 학비를 의전, 치전, 일반 대학원 등 다른 공교육 제도에 들어가는 비용과 비교할 것인지, 아니면 '사법시험'에 소요되는 사교육비용, 또는 수험비용에 비교할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겠죠. 또한 심지어는 로스쿨 비용을 산정하시면서 기존 회사에 있었으면 받게 되었을 월급의 일실이익(기회비용이라고 그럽디다.) 까지 고려해서 과도한 비용이 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소요되는 비용의 범위를 그렇게까지 확대하는건, 과장일 뿐입니다. 기회비용이 없는 선택이 과연 어딨겠습니까. 직장포기하고 오신분들도 나름의 합리적인 계산이 있으셨던 것이겠죠. 그리고, 장학금에 관해서도 생각보다는 수혜의 범위가 넓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간에 로스쿨엔 갑부들만 온다는 오해가 있는 듯한데, 사실, 저와 우리 학교를 기준으로 보면, 평범한 서민들이 대부분인듯.
세상에는 단순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삶을 사는 이유가 단지 경제적 이익 극대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직장 그만두고 오시는 분들은 그렇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에 좀 더 많은 투자를 하신거겠죠. 또한 직장생활을 통해 연봉은 많이 받겠지만, 그로 인해 부차적으로 잃게되는 수많은 것들은 역시 함께 고려해야할 부분이잖습니까. 직장과 고액연봉이 그렇게 좋다면, 왜 다들 이직하거나 또는 자아실현하려고 더욱 노력하겠습니까. 간혹 주먹구구식 숫자놀음에만, 집착하시는 분이 계신데, 세상을 좀 인간답게 보셨으면 합니다. 자본과 물질이 삶을 지배하는 순간, 삶은 얼마나 무의미해 집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