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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초를 당하는 작가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절대 움추러 들지 말고 당당하십시오~! 국민이 함께 합니다.
끝까지 응원하겠습니다.
안되면, 제 사비라도 털어서 어떻게든 도와드리겠습니다.
바른말 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두려움을 주는 정권과 싸워야 합니다.
정권에게 이양한 권력은 원래 국민의 것입니다.
신념대로 선을 행해서, 일시적으로 해를 입을지라도
그것은 짧은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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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년의 금서> 가지고 돌아온 김진명
▲ 소설가 김진명씨
김진명이 돌아왔다.
오랜 침묵을 깨고 귀환한 작가 김진명의 손에는 묵직한 문제작 <천년의 금서>(새움출판사)가 들려 있었다. "꼬박 180분 동안 앉아서 끝까지 다 읽었다!" "다 읽을 때까지 결코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다수의 누리꾼과 블로거들이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쏟아낸 찬사였다.
그리고 단 일주일 만에 <천년의 금서>는 베스트셀러 4위(예스24 기준)로 뛰어올랐다. 불황으로 고전하는 최근 출판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놀라운 기록이었다. "그동안 몇몇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용두사미식 결말은 더 이상 없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서술 때문에 술술 읽혔다"는 한 블로거의 평가는 빈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천년의 금서>를 작가의 16년 전 첫 작품이자 출세작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연결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년의 금서>의 주인공 이정서에게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 이용후가 연상된다는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사회자의 평가도 있었다. 실제로 이정서의 직업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거느린 소설의 주인공' 이용후와 같은 핵물리학자로 설정돼 있다.
하지만 주인공 이정서가 소설 속에서 활약한 공간은 과학이나 정치가 아니라 '역사'의 영역이었다. 자살(타살로 위장된)한 물리학 교수 김미진과 실종된 역사학 교수 한은원의 친구인 이정서는 두 사람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의 유래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그러니까 국호인 대한민국에 들어있는 '한(韓)'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라는 '상식적이지만 본질적인 질문'이 <천년의 금서>의 모티프이다.
"삼한은 한(韓)이라는 웅혼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
"대한민국!"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전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 목 놓아 외쳤던 구호였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한국, 한국인, 한반도 등의 단어를 너무나 자주 그리고 쉽게 쓰고 있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의 기원과 유래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렇게 심각한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작가는 <천년의 금서>를 통해 아프게 따져 묻고 있다.
1948년 제헌의회에서 제정된 국호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유래를 추적하면 또 하나의 대한민국(1919년, 임시정부)과 대한제국(1897년, 고종황제)이 등장한다.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제(帝)'를 '민(民)'으로 바꾼 것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고종은 왜 국명을 조선(朝鮮)에서 한국(韓國)으로 바꿨을까? 물론 사료에는 "삼한(三韓)을 잇는다"(고종실록)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김진명은 여기서 커다란 모순을 발견했다고 한다.
"과거 역사를 보면 대다수 나라들은 새로운 국명을 지을 때마다 화려한 과거를 계승하려 했다. 실제로 왕건의 고려는 만주를 호령했던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지어졌고, 이성계의 조선은 단군이 통치하던 고조선(실제 명칭은 그냥 조선)을 잇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삼한은 마한·진한·변한을 가리킨다. 우리 학생들이 지금 배우고 있는 국사 교과서에 따르면, 삼한은 한반도 남부에 위치해 있었던 작은 나라들이다."
이 대목에서 김진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국경으로 두고 있었던 조선이 고작 한반도 남단에 움츠리고 있던 삼한을 잇고자 국호를 바꿨을까? 더욱이 고종은 당시 외세의 억압을 떨치고 조선의 기개를 펼치기 위해 칭제건원(稱帝建元)까지 했던 터였다. 어쩌면 삼한은 그전에 이미 한(韓)이라는 웅혼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문득 들었던 그 '상식적 의문'이 나로 하여금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진명은 자신의 작품이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고 해서 '과거지향'이나 '복고주의'로 해석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선입견에 의해서 '국수주의'나 '국가주의'로 규정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도리어 그는 <천년의 금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민주주의적 가치의 후퇴, 북한의 핵실험과 극한 대결로 치닫는 남북관계 등 산적해 있는 현실적 과제들을 풀 수 있는 열쇠와 지렛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명과의 인터뷰는 지난 3일 오후 2시부터 평창동에 위치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고대사를 다룬 작품 이야기를 하기 전에 현재의 사안에 대한 작가의 생각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가장 더티한 지도자의 정권에서 가장 깨끗한 지도자가 부패혐의... 아이러니"
- 봉하마을에 조문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알아보는 사람들은 없었나?
"일반 조문객들 사이에 섞여서 조용히 배례하고 돌아왔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끝없이 이어지는 조문 행렬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역사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 역사는 지배층의 위로부터의 규정과 민초의 아래로부터의 희망이 뒤섞이고 엮어지는 과정이다. 그날 민초들은 말없이 흐느꼈지만 거기서 과거 민주화 대항쟁과 맞먹는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 '인간 노무현'을 직접 만난 적은 있었나?
"같은 부산 출신이라 공·사석에서 몇 차례 인사를 나눌 수 있었지만 깊은 대화를 한 적은 없다. 처음에는 그냥 편하고 가식 없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영남 출신으로 호남색이 강한 정당에서 어렵게 정치 하는 것을 보면서 '외로운 늑대'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했다."
- '대통령 노무현'의 죽음이 우리에게 던진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그를 따르던 사람과 적대적으로 대하던 사람보다 중간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 중요한데, 그들의 정신적 충격이 아주 컸을 것이다. 양비론과 냉소주의에 빠져 있던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감동과 안타까움의 크기와 깊이가 이후 한국 사회 변화에 의미 있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 김동길·조갑제·지만원·변희재 등의 발언은 들었나?
"한마디로 미친 ×들이다. 논리도 편협하거니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 논평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
- 이명박·검찰·언론의 합작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측면이 있다. 특히 '피의사실공표죄'를 스스로 어겼던 검찰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사실 나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 부동산 투기 의혹의 진상을 조사해 달라고 검찰에 진정을 한 바 있다. 지도자의 부동산 투기는 오히려 독재보다 더 더티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더티한 지도자의 정권에서 가장 깨끗한 지도자가 부패혐의로 조사받았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기자는 2007년 1월 28일, 2월 28일 두 차례에 걸쳐 김진명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나비야 청산가자>를 발표했던 당시 그는 "손학규 한나라당 탈당은 결코 '소설 같은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얼마 후에 그의 예언(?)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한편, 그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 후보를 향해 다음과 같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정치지도자가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은 밀수보다 더 나쁘고, 살인보다 더 무서운 악랄한 짓이다. (이명박 비리의혹을 옹호하는 지지자들에게) 단순히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다른 것은 보지 않겠다는 것은 독재를 부르는 행위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략) 이명박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거나 진심으로 반성하려는 자세가 없다."
- 대중적인 정치소설을 써왔던 작가로서 앞으로의 정국을 전망한다면?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엄청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나라는 큰 문제 없이 굴러갈 것이다. 그래도 현직 대통령이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그는 참 정치를 모르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도리어 내가 주목하는 것은 따로 있다."
- 그게 뭔가?
"힘(권력) 앞에서 나약했던 지식인들이 변화될 가능성이다. 사실 이번 사건이 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부끄러움을 깨닫게 했다. 앞으로 손해와 위험을 무릅쓰고 실천과 행동에 나서고 싸우는, 안중근과 체 게바라 같은 지식인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체질을 서서히, 차츰차츰 하지만 거대하게 바꾸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 남북관계가 갈수록 대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데?
"그렇다. 하지만 이번 미사일 발사는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이 남한 정권을 살려준 셈이 됐다. 진보 진영은 북한을 원망하는 기미를 보이는데, 북한 지도층은 남한의 사고틀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좌와 우를 떠나서 완전히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라면 사재기 현상이 없어졌다. 거꾸로 안보 불감증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정국이 얼어붙고, 감정이 고조되고, 대결 구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대책도 없이 무조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도리어 좋지 않다. 정치적 목적 하에 안보 불안을 조장했던 과거의 학습 효과 때문에 남한 시민은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제시했던, 남과 북이 종국에는 같이 가야 할 공동운명체라는 발상의 전환도 일정하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 정치권 일각의 핵 무장론, 어떻게 보나?
"가소롭다. 너무나 생각 없는, 철부지 같은 발상이다."
- 작가 자신이 소설에서 남북 합작 핵 무장을 제시했던 당사자인데, 그렇게 말할 수 있나?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독도 영유권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언제든지 독도를 빼앗으려 한다. 나는 일본의 독도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핵 무장을, 그것도 남북 합작으로 하자고 제시했다. 북핵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도 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정치인들은 북한을 겨냥한 핵무장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그것은 민족을 향해 핵을 쏘겠다는 반역사적 행위로 공멸을 재촉할 뿐이다. 민족에 대한 애정이 없는 반사적인 감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그렇다면 북한의 핵 개발은 어떤가?
"같은 논리의 연장으로 나는 북한의 핵 개발도 반대한다. 자국 주민의 기아와 아사에도 불구하고 정권 유지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현대적 의미에서 국가가 더 이상 아니다. 따라서 남한 일각의 핵 무장론은 그런 북한과 같은 수준이 되자는, 아주 유치한 발상이다."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특수성이 있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애를 먹은 것 아닌가. 대북관이 뚜렷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갈팡질팡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큰 문제는 민족적 시각과 철학의 깊이가 없다는 점이다. 동족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고, 그렇다고 날카로운 대북전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남북관계 교착화'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 정도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리는 것도 책임 있는 자세는 아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정부의 책임은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반북 세력에게 있다. 그들은 북한 정권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과 어떤 대화와 타협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 정부가 그들과 코드를 맞추고 있다 보니, 두 세력이 갈라서지 않는 한 어떤 유연한 대북 정책도 기대할 수 없다."
-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없나?
"사실 더 무거운 책임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통 국민에게 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반북 세력의 대북 정책에 동조한다.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의 기저에는 '나도 살기 어려운데 왜 가난한 북한에 퍼주느냐'는 생각이 깔려 있다.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마저 설문조사에서 '왜 가난한 북한과 통일해서 우리의 부담을 늘리려 하느냐'며 통일에 대해 노골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이러한 '근시안적 이기주의'의 잡초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민족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의 나무를 심지 못한다면 남북관계의 평화적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 민족과 국가, 혹은 역사와 민중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 무조건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애국심이 약한 사회는 비겁한 사회가 된다. '나 혼자만 잘살면 되지 왜 나라에 충성하고, 타인에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민족과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바로 그런 나라에서는 '부동산 투기꾼'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 국가나 애국심에 대한 거부 반응은 진보 진영에서 도리어 더 강한 측면이 있는데?
"과거에 독재정권이 이용해 먹었기 때문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보 진영의 이념과 철학에서 국가나 애국심의 개념을 아예 삭제하거나 나아가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이다. 개인의 자유, 정의, 휴머니즘은 물론 소중한 가치이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공간과 대상이 일차적으로는 국가와 민족이기 때문이다."
"국호의 유래조차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나?"
자연스럽게 화제를 <천년의 금서> 이야기로 돌렸다. 김진명은 학교의 역사 공부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을 지적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 공부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고대사를 신화로 처리했기 때문에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인데, 결과적으로 '통합'의 역사보다는 '분열'의 역사부터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말은 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신라와 백제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를, 고구려에서 북한을 연상한다. 우리처럼 민족적 수난을 겪었던 폴란드 같은 나라들을 그나마 끝까지 견디게 만들었던 것은 '역사'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어리석게도 우리는 역사를 거꾸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고시 과목에서 국사가 제외되는 등 현실에서도 역사는 철저히 천대받고 있다."
- <천년의 금서>를 구상한 시점은?
"5~6년 전부터였다. 당시부터 왜 우리가 한국인이라 불리는지, 왜 우리나라 국호를 한국으로 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물어봤지만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정말 이건 문제라고 생각했고, 심층 추적을 시작했다."
- 주인공 이정서 박사와 한은원 교수가 잃어버린 고대사 3000년을 찾아내는 과정이 '소설'이 아니라 '진짜'였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일부 독자가 보이기도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상상력만 가지고 소설을 쓰지 않았다. 언제나 객관적 근거와 자료를 확보한 뒤에야 집필을 시작했다. 광개토대왕비의 보이지 않는 세 글자의 해석을 둘러싸고 수백편의 논문이 나오고 대다수 학자들이 '석회도말론'에 발목이 잡혀 있을 때 마지막 글자가 '동(東)' 자라는 것을 밝혀낸 것도 나였다. 명성황후의 비극적 최후를 밝혀낸 '에조보고서' 전문을 일본에서 발굴해 낸 것도 나였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은데, 이것들만 별도로 모아서 책이라도 한 권 내야 할 것 같다."
- 역사학자들의 반응이나 평가는 없었나?
"역사학자도 아닌 사람이 왜 나서느냐, 김진명이 내놓은 주장은 틀렸다, 사실 나는 이런 반응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논쟁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역사학자, 특히 고대사 전공자들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본다. 국호의 유래조차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의 실험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주류 사학계가 위서로 규정한 <단군세기>는 고려 말기 이암이 썼다. 그런데 이 책에 '13세 단군 흘달 재위 49년(서기로 하면 BC 1734년)에 오성취루(五星聚婁: 화성·수성·목성·금성·토성이 양 별자리에 한 줄로 모였다) 현상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박 교수가 천문학 실험을 해보니 BC 1733년에 실제로 그런 현상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장구한 역사에서 1년이라는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은 고서에 등장하는 '남해조수퇴삼척'이라는 자연현상도 박 교수의 실험을 통해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 과학적 실험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규명했다는 것인데, 그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무언인가?
"중국 역사서에 최초로 고조선이 등장한 것이 BC 200년 무렵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BC 1734년은 가공할 만한 기록이다. 오성취루 등의 천문 현상을 기록할 정도로 당시 한반도에 문명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류 사학계가 <단군세기>, <환단고기> 등 우리 고서에 나타난 일부 오류를 들어서 무조건 위서로 몰아 왔는데, (과학실험에서 보았듯이) 앞으로는 일부 기록은 사실일 수도 있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 천문학적 근거에 이어서 서지학적 근거도 제시했다. 작품에는 중국의 수많은 고서가 등장하는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천년의 금서로 묘사한 <씨성본결>은 가상의 저서이지만 <시경(詩經)>과 <잠부론(潛夫論)>의 기록은 사실 그대로이다. 실제로 <시경> '한혁(韓奕)'편에는 '한후(韓候)가 수도에 들자 선왕(宣王)은 경계를 논하였으며 조카딸을 시켜 밤 시중을 들게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한후가 바로 한국인의 조상이다."
- 한(韓)은 중국에도 존재했던 나라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시황제가 통치했던 진(秦)나라가 망하고 초(楚)나라의 항우와 한(漢)나라의 유방이 천하 패권을 놓고 다툴 때 유방을 도왔던 명장 한신(韓信)이 바로 진나라에 망한 한(韓)나라의 후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맞다. 한신의 조상 나라인 한(韓)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먼저 한을 국호로 쓴 나라이다. 실제로 이 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전국칠웅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 한나라의 건국 시점은 BC 403년이다. 하지만 한혁편에 나오는 선왕은 춘추전국시대보다 한참 앞선 시대인 주(周)나라의 왕인데, 재위 기간이 BC 827~782년이다. 그러니까 한후가 그보다 400년이나 앞선 시대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두 나라는 전혀 별개이다."
- <잠부론>에선 어떤 기록을 찾았나?
"이 책은 후한(後漢)의 대학자 왕부가 지은 문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의 씨성(氏姓)편에 한후가 다시 등장한다. 실제로 '한후는 연나라 부근에 있었다'거나 '그 후에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 등의 대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위만이라면 고조선과 관련 있는 인물이 아닌가?
"그렇다. 여기서 바다는 황해가 틀림없다고 본다."
-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공백으로 남아 있던 고대사 부분이 복원될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 우리 조상은 BC 1733년 오성취루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약 1천년 후인 BC 827~782년에 한후는 주나라 선왕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1천년의 시간이 흐른 뒤 후한의 왕부는 <잠부론> 씨성편에서 한후의 후손이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고 기록했다. 작품 속에서 천년의 금서로 묘사한 <씨성본결>은 바로 이 '씨성'편을 모델로 설정한 것이니,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 지금 얘기한 것들이 모두 사실인가?
"직접 확인해 보면 될 것 아닌가."
기자는 인터뷰 기사를 작성한 뒤 국회도서관을 찾았다. 국회도서관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지면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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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추]
- '대통령 노무현'의 죽음이 우리에게 던진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그를 따르던 사람과 적대적으로 대하던 사람보다
중간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 중요한데,
그들의 정신적 충격이 아주 컸을 것이다.
양비론과 냉소주의에 빠져 있던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감동과 안타까움의 크기와 깊이가 이후
한국 사회 변화에 의미 있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 김동길·조갑제·지만원·변희재 등의 발언은 들었나?
"한마디로 미친 ×들이다.
논리도 편협하거니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
논평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
- 이명박·검찰·언론의 합작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측면이 있다. 특히
'피의사실공표죄'를 스스로 어겼던 검찰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사실 나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 부동산 투기 의혹의 진상을 조사해 달라고
검찰에 진정을 한 바 있다.
지도자의 부동산 투기는 오히려 독재보다 더 더티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더티한 지도자의 정권에서 가장 깨끗한 지도자가 부패혐의로 조사받았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007년 1월 28일, 2월 28일.
그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 후보를 향해 다음과 같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정치지도자가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은 밀수보다 더 나쁘고,
살인보다 더 무서운 악랄한 짓이다.
(이명박 비리의혹을 옹호하는 지지자들에게) 단순히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다른 것은 보지 않겠다는 것은 독재를 부르는 행위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략)
이명박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거나 진심으로 반성하려는 자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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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모교도 시국선언~ 챙피한줄 알아 이것아~ (3) | 2009.06.08 |
봉하마을 CCTV 원본을 공개해 주십시오.
세영병원 주위에 설치된 CCTV도 원본을 공개해주세요.
공개한 CCTV가 조작이 아니라 진짜였다면
노무현대통령님은 시해를 당했다는 것을 경찰이 완벽히 고백한 것입니다.
경찰이 밝힌 CCTV는 조작된 영상입니다.왜 조작을 했습니까?
네티즌들이 주장하듯이 경찰 내부에서도 시해를 알고 있기에 백성들에게 신호를 보내려하는 것은 아닙니까?
편집을 위해 조작을 위한 시간이 2주가 필요했다면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는가?
서거전날 cctv라고 검찰이 밝힌 영상중...나무가지아래사진과 비교
사진1
연합뉴스에서 2009년 5월 12일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2
위 사진 좌측 아래의 경호동건물 처마를 기준으로 사저 지붕까지 실선으로 표시해 보겠습니다.
빨간색 원 안에 바람구멍을 잘 보아 두십시오.
물론 빨간색 원 우측으로도 바람막이가 끝나는 지점까지 바람구멍은 계속 있습니다.
사진3
이해를 돕기 위해 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2009년 5월 3일에 관광객이 찍은 것입니다. 원거리지만 칸막이 바람구멍이 보이시죠?
마우스 우측버튼으로 아래 그림을 클릭하시고 저장해 원본크기로 보시면 더 잘보입니다.
사진4
경찰이 공개한 CCTV의 한 장면입니다.
노통이 사저를 나서 맨 처음 풀을 뽑은 위치입니다. 칸막이의 라운드진 부분을 주목해 두십시오.
경찰에서 알바를 고용해 노통께서 처음 풀을 뽑은 위치가 정문 경계 바로 옆이라고 주장하며 사진상 위치를 조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보셨듯이 정문을 나선 노통께서는 이미 정문경계로부터 20미터 정도를 걸어가신 후에 허리를 숙여 풀을 뽑고 있는 것입니다.
CCTV가 노통께서 걸어가시는 장면의 일부를 짤라내(편집) 짜집기를 한 탓입니다.
칸막이 라운드를 주목하라고 하는 이유는 이미 4월 24일부터 이 부분부터 칸막이가 끝나는 지점까지 커다란 바람구멍이 3~50센티 간격으로 뚫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알바를 동원하지 말고 당연히 현장실사를 통해 반박해야 합니다.
사진5
이 사진은 노통이 처음 풀을 뽑으신 위치를 위쪽에서 표시한 것입니다.
위 사진 4에서 표시한 부분으로 당연히 바람구멍이 3~50센티 간격으로 쭉 보여야 하지만 CCTV화면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6
당연히 아래사진의 빨간 원안부터 시작해 사진 1의 바람구멍들이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7
아래 사진은 반대편에 있는 CCTV가 찍은 화면입니다.
우측의 나무 A와 B를 주목하십시오.
사진8
경찰의 CCTV에 나오는 후반부 장면.
칸막이 끝부분에 구멍들이 보일 것입니다.
이 구멍은 4월 22일 전에 일부 먼저 뚫려 있던 것입니다.
사진9
2009년 4월 19일 사진
사진을 잘 보시면 상단부분까지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까지는 구멍이 없었다는 예기.
사진10
연합뉴스에서 4월 20일 촬영
사진11
연합뉴스에서 4월 21일 촬영
사진12
2009년 4월 22일 사진.
바람막이가 끝나는 부분에 몇 개의 구멍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바로 옆 천막이 늘어진 부분에는 구멍이 없습니다.
이것은 4월 22일 이전에 측면에서 강풍이 불어 그 위치만 먼저 구멍을 뚫은 것입니다.
네티즌 여러분 중 2009년 4월 22일에 아래사진과 비슷한 앵글각에서 찍은 사진이 더 있으시면 제공해 주십시오.
사진7의 CCTV가 조작이 아니라면 4월 22일에서 23일 사이에 찍힌 영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사진13
연합뉴스에서 4월 24일 촬영
위 사진7에서 표시한 나무 A와 B가 보이십니까?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맞은편 칸막이로 바람구멍이 보이십니까?
사진14
연합뉴스에서 4월 25일 촬영
사진15
2009년 5월 10일 사진.
이 때는 이미 사저 정면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막기 위해 왼쪽방향으로 쭉 구멍을 뚫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사진에서 처럼 2009년 2월 19일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4월 21일까지는 칸막이에 바람구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4월 20일부터 봉하는 비바람이 강했고 그 때문에 사저 맨 우측에 있는 바람막이쪽부터 바람구멍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1과 2로 표시된 부분은 2009년 4월 21일까지 단 하나의 바람구멍도 뚫려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강풍이 심해지자 1로 표시된 부분은 2009년 4월 22일에서 23일 사이에 일부만 먼저 뚫은 것으로 보입니다.(사진8의 CCTV 영상에 나타나는 부분)
이후 4월 24일에는 2로 표시된 부분(좌측으로 정문 앞만 제외하고 구멍 뚫음)에까지 바람구멍이 뚫린 것으로 사진으로 확인됩니다.
그런데 경찰이 공개한 CCTV(사진4)에는 있어야 할 위치에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CCTV에 찍힌 영상이 4월 22일이나 23일에 촬영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경찰의 CCTV영상은 5월 23일 것이 아닙니다!
경찰은 왜 4월 24일 이전의 CCTV를 5월 23일 것이라 했습니까?
(생중계)유시민 서울광장 봉쇄는 헌법이 짓밟힌 것 (0) | 2009.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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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모교도 시국선언~ 챙피한줄 알아 이것아~ (3) | 2009.06.08 |
명박이는 사죄하라! 고함친 백원우 의원 (10) | 2009.05.29 |
(엉터리인 이유는 맨 마지막에..)
토론중 "소통의 부재가 원인이다" 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더불어 소통의 부재( 국정운영 방식) 뿐 아니라 국정 운영의 목적(국정기조 자체) 가 더 문제 라는 것에 일부 토론자는 합의를 봤다.
애초에 소통자체가 안되는 인물이 권력자가 되었다는 가설은 엉뚱한 것일까?
소통하는 것이 조금 서툴고 어려운것이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권력자 말이다.
토론 참여자 모두 보이지 않는 잘못된 가설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써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소통만 되면, 사과만 하면, 될것 처럼 이야기 하더라?
대운하, 의보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미디어법(재벌의 언론소유) 등
어차피 대화를 시작하면, 이명박의 정치 목적, 정치 기조는 모두 다 불가능 할것이다.
마치 소통만 되면 이명박이 깨닫고 뭔가 변화 할것처럼 국민을 속이지 말라.
차라리 해법은 최홍만 같은 격투기 선수를 국회위원으로 뽑아서 말 대신 쥐어 박는게 더 낫다.
권력자가 바보 가 아닌 이상 왜 소통을 거부하겠는가? (bbk같은걸 보면, 머리는 좋은 분이다.)
결국은 거부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을 꾸미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소통이 문제가 아니라 소통을 하면 안되는 정치를 하고 있다.
분명히 이명박 정권은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다. 단지 소통의 대상이 국민이 아닌 소수의 기득권일 뿐인것이다.
결국 국민이 바라는, 소통은 MB에게는 자신의 이권의 포기이고, 정치 목적의 포기인 것이다.
국민이 내릴수 있는
결론은 이명박이 하야 하거나, 국민을 계속 억누르는 정치를 지속하거나 두가지 중 하나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의 책임을 따질 필요도 없다. 우리 동네 초등학생들도 이명박이 노무현을 죽였다고 한다.
결국 사과 안하고, 국민들을 더 화나게 해주는 것이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닐까?
이 시점에서 화해하고, 민주당은 정치적 떡고물을 얻는 식으로 한통속이 되어 얼추 그냥 구렁이 담을 넘어 버리면,
국민들은 남아 있는 엠비의 임기 내내 국민은 약자로 짓밟히고 괴롭힌 당할 것이다.
그간 촛불정국이나 표현의 자유 침해, 집회추모금지, 권력을 이용한 정치보복, 노무현 서거후 보이는 파렴치한 태도, 용산 참사, 이건희 면죄부 등등..
인터넷에 이명박이라고만 치면 그가 행한 잘못의 리스트가 쫘악 뜬다.
얼마나 더 긴 리스트를 정치인, 당신들은 원하는 것인가?
정치인 들이여, 그냥 한번쯤 노무현처럼 자신의 이익 생명 다 내려놓고, 뭐가 국민을 위한 것인가 를 생각해 주길 바란다.
ps. 우리 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자기가 찍어 놓고선, 이젠 싫으니 탄핵을 원한다.
물론 국민이 바보라서 그런것이 아니다. 이게 다 조중동 때문이다.?
중소기업에라도 다닐라 치면, 학교에서 교사라도 할라 치면..
수십년간 조중독을 별생각없이 정독하게 되는 현실..
fact를 왜곡 해서, 하나의 시각으로만 편집해 버리는 언론이 사라져야 올바른 민주주의가 된다.
왜 죽기전엔 미움 받던 죄인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분의 업적과 진정성을 국민들이 깨닫는 것일까??
미디어법 통과되고, 이대로 여야가 어물쩡 서로 이권을 나눠 가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토론의 주제는 "이명박 탄핵 가능한가?" 라는 주제가 적절했다는
분만 손가락을 누르세요 !!
아래 기사를 많은 분들이 보았으리라 생각하지만 혹 아직 못보신 분들이 있으시면 보시라고 옮깁니다. 그리고 박상주 논설위원은 신문이라고 명칭이 붙으면 모두 언론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고 당부하시고, 더불어 그중엔 개라고 불려야 될 것들이 있다고 평했음. 출처 ‘봉하마을 아방궁?’과 ‘흑석동 아방궁!’ [시평]박상주 논설위원 어떤 언론사 기자들은 별다른 눈을 달고 태어난 걸까? 왜 그들의 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사저가 아방궁으로 보였을까? 며칠 전 봉하마을에 다녀온 한 지인이 분통을 터트렸다. 한 동안 보수신문들이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놓고 ‘아방궁’이니 ‘노무현 타운’이니 난리법석을 떨어서 대단한 줄 알았더니 소박하기 짝이 없는 집이더라는 것이다.
방 사장 집,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 2위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굽어보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한 언덕. 그림 같은 저택이 3748평의 널찍한 숲을 독차지한 채 들어서있다. 바로 방상훈 사장의 저택이다. 건평 221평, 대지 1539평, 임야 2209평, 전체 3748평. 올해 국세청 공시가격으로 79억 5000만 원짜리다. 매년 국세청에서는 발표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 리스트에서 2위 자리에 오르는 집이다. ‘손자의 놀이용 플라스틱 골프채가 고가의 수입골프채로 둔갑되고, 거기에 딸린 한 개에 460원하는 골프공이 12,000원짜리로 변신하는가 하면 노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가 농가수입을 위해 가꾸어 잔디시설 보수용으로 판매하고 있는 배추밭 딸린 100평 남짓한 잔디 기르는 밭이 개인용 골프장으로 확대, 왜곡되어 보도 된 것 등은 언론으로서는 커다란 부끄러움으로, 인척들에게는 가슴 아픈 응어리로 남았다.’ (2008년 2월 18일자 영남매일 ‘봉하마을의 진실2-노무현 대통령 금의환향’)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 똑같은 현장취재 결과가 이렇게 다를 수도 있는 걸까? 물론 두 기자의 취재 시점엔 다섯 달 가량의 시차가 난다. 위클리 조선의 보도가 나간 이후 호화판 골프 연습장을 없앴을 수도 있다. 골프채를 바꿔놓았는지도 모른다. MB와 방회장님의 사진 (더보기 클릭)
극과극 보도 봉하마을 사저 르포 몇 사람을 오랫동안 속이거나, 여러 사람을 잠시 속이는 일은 가능하다. 그러나 세상을 영원히 속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정보화 시대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강짜를 부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성매체들의 거짓 혹은 부실 기사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네티즌들에 의해 폭로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생뚱맞게 기자정신이니 정론직필이니 설교할 생각은 없다.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하는 건 죄악이요 범죄행위 아니냐? 장마철 벼락이 두렵지 않느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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