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우편배달을 나가면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아파트 공한율이 크게 늘었다는 겁니다. 한 아파트가 비면 보통 금방 금방 새로운 사람들로 바뀌고 차기 마련인데, 마냥 비어 있는 아파트들도 꽤 늘었습니다. 게다가, 콘도미니엄(우리나라식으로 매매 가능한 아파트)으로 전환하려 공사를 해 놓았던 일반 임대아파트들의 판매율도 저조합니다. 심지어는 그런 곳들은 처음에 공시했던 가격에서조차 1/3 이상을 내린 상태지만, 그래도 거래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시애틀의 부동산 시장은 2년전만 해도 누구나 '불패'를 이야기했었던 곳입니다. 지난 2001년, 지금 살고 있는 작은 집을 구입할 당시, 가격은 20만달러 정도였습니다. 그것이 2년 전 34만달러까지 올라갔을 때, 저는 완전히 '미쳤구나'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습니다. 그 집을 담보로 해서 이른바 '에쿼티 론'을 빼서 쓴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른바 '막차잡이'들도 시작됐습니다. 물론 그 당시엔 막차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사람들은 자기 집을 저당잡히고 융자를 받아 또 집을 사 들였습니다. 그래서 그 집을 세를 놓아선 월 모기지 페이먼트를 갚고 재산을 늘린다는, 얼핏 보기에 참으로 흐뭇하고 그럴듯한 재산증식(그것도 놀고 먹으면서)의 꿈에 부푼 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집도 그 막차를 탈 뻔 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집이 조금 작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던 아내와 저는 함께 집을 알아보러 다녔지만, 이미 천정부지로 뛰어버린 집값들을 감당한다는 것이 우리 능력에는 맞지 않다는 데 동의하고, 앞으로 몇년은 이사갈 생각 말고 지금 우리집에서 사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더랬습니다. 그리고 저도 분명히 보이고 있는 버블 붕괴의 조짐에 대해 불안해했지만, 제 주위 사람들은 전혀 그런 조짐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서브프라임 문제가 도래했을 때, 사람들은 불안을 느꼈고 그때까지의 주택구매 열기는 정말 말 그대로 '어느날 갑자기',공중분해 되듯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팔자'고 아우성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시장은 그 불안감을 알아챈 지 오래였습니다. 거래가 뚝 끊기고, 집값은 대거 폭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상황을 낙관하는 덜떨어진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특히 시애틀 주위의 벨뷰, 레드몬드, 클라이드 힐 등 이른바 '학군 좋은 지역'에 대한 선호도는 한국에 있으나 여기 있으나 한국인들에겐 마찬가지여서, 주위의 다른 매물들의 가격이 뚝뚝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오랫동안 버텨주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도 폭락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한인사회에 발행되는 신문 부동산 광고를 보면 거의가 포클로저, 그러니까 '차압 매물 세일'입니다. 매물로 나온 주택들을 보면, 당연히 막차를 탔던 이들이 결국 은행빚을 못 이기고 나가떨어진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한때 백만달러를 상회했던 고급 주택들도 심하면 5-60만달러로 떨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반토막났다'는 것이지요.
요즘 미국에서 주택 거래량이 상승했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보이는 뉴스들이 계속해 나오고 있고, 이런 것들이 어떤 경제 회복의 지표로서 보여지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는 뉴스일 뿐인데, 실제로 거래량이 늘기는 했을 터입니다. 시장의 법칙에 의거해 사람들의 수요가 없으니 가격은 계속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고, 그 기회를 타서 실제적으로 집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요는 분명히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와 같은 부동산의 '이상 활황'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도박판에서 마지막 판돈 걸고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의 심리와도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것은 말 그대로 '개평조차 없는' 도박판입니다. 실거래 건수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투기를 전제로 해서 지어댄 집들이 조만간에 팔릴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실업의 해소인데, 이에 대해서도 연방정부 관계자들은 실업수당 수혜자가 줄었다는 통계를 내 놓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여름철의 임시직 고용 증가에 따른 것입니다. 어디나 사람사는 곳이 다 그렇듯, 여름철엔 여러가지 임시직들이 생겨납니다. 농장근로자, 혹은 아르바이트 직들이 실업을 일시적으로 줄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가을이 되어 보면 또 다른 숫자로서 나타날 것입니다.
아무튼, 요즘의 부동산 경기 회복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뉴스들을 볼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지금의 경제상황은 말 그대로 이들의 '슬픈 자화상' 이라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직업이 없어서 결국 아파트 렌트를 내지 못해 쫒겨나고, 아파트 공실률은 늘어가고, 무선인터넷이 되는 어느 빌딩 앞에 담요와 이불을 깔고 엎드려 인터넷을 통해 구직정보를 찾고 있는 멀쩡한 홈리스-며칠 전까지는 분명히 내가 배달하는 어느 아파트의 주민이었던-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재화를 생산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그 재화를 나누는 데는 절대로 익숙하지 못한' 현대사회의 모순과, 오늘날 미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 하나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애틀에서...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 그리고 지금 주식 시세의 끝도... |